수필

키움에 관하여

Bogaeng 2024. 10. 24. 22:57

잠자는 방울이

 

 

 

내 사무실에는 도토리나무가 있다. 매일매일 상태를 보고, 벌레를 잡아 주고, 마르면 물을 준다. 다른 화초처럼 하루가 다르게 크지는 않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나름의 보람이 있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항상 떠올리게 한다. 어렸을 때 내가 길에서 주워 온 도토리를 본가 화분에 심었었는데, 그게 20년 넘게 자라고 있다. 어머니랑 그 도토리나무 얘기를 자주 한다.

 

예전에 포천에서는 나 부장님 사무실과 내 방에서 구피를 키웠었다. 물도 자주 갈아 줬고, 구피 집이랑 여과기, 수초, 아몬드 잎 등등 안 사 본 게 없다. 덕분에 구피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었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구피 보면서 머리를 비웠는데, 구피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기 때문에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나이를 들면서 무언가를 키운다는 게 제일 재미있는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아직 서투른 부분이 많긴 하지만. 탐구욕이 강한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고 재미없는 일에는 쉽게 질리는 편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키운다는 건 상당히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요하고, 끊임없이 공부도 해야 한다. 또, 키우는 사람은 나지만 나도 그것이 어떻게 자랄지 알 수 없다. 그만큼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어서 쉽게 질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키우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안타깝게도 상황이 받쳐 주지 못해서 키우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강아지도 너무너무 좋아하고, 신기한 식물들도 더 키워 보고 싶다. 그런데 강아지는 같이 오랜 시간 있어 줘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고, 아직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해 이사를 다녀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화분을 늘린다는 것도 부담스럽다.

 

반대로 일에 대한 욕심이 무언가를 키운다는 걸 가로막는다. 나는 최대한 죽기 전까지는 일을 할 생각이고, 거기서 오는 즐거움도 있어서 일에 대한 욕심도 어느 정도 내는 편이다. 그런 만큼 무언가 내가 책임을 지고 키우는 것들을 늘린다는 게 부담스럽다. 오히려 돈은 나중 문제인 것 같고, 시간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구피만 해도 약간의 부담감이 있었다. 자동 급여기가 있었으므로 하루 이틀 집을 비우는 것은 괜찮지만, 긴 시간 집을 비우게 되면 누군가 구피를 돌봐야 했다.

 

만약 나이를 먹고 일을 조금 줄이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을 키우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엔 AI 반려동물도 보편화될 텐데, 그런 것도 키우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집에 내가 키우는 것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일단 일 열심히 해서 집부터 마련하고 차차 하나씩 늘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