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21년

Bogaeng 2022. 4. 2. 17:24





변시 한 달 전쯤, 원룸을 나와 산책을 간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신촌은 들뜬 사람들로 북적북적했고, 변시에 찌든 나와는 대비가 되었다.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시험에 대한 긴장감이 안 느껴진다 싶었다. 원래 시험에 대해 긴장하지 않는 편이기도 한데, 2021년에는 공부도 했지만 오히려 변시 그 자체나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바닥부터 다시 하게 된 해였던 것 같다.

2021년 4월, 변시 불합격 발표를 보고 나서 당장은 힘들지 않았다. 그때 내 전화를 받았던 친구들은 아직도 “형 그때 완전 멀쩡하던데?”라는 식의 이야기들을 한다. 맞는 이야기다. 사실 변시 떨어진다고 전혀 인생 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후 좀 힘들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니 죄송스러워서였고, 주변에 도움 주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다시 공부 시작한 직후에는 합격에 대한 열망이 좀 강했던 것 같다. 게으른 나인데도.

그리고 5월에 신촌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학원을 다니게 됐다. 처음에야 따라가느라 헉헉댔지만, 나중에는 관성적으로 학원에 다니고 공부하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접촉이 극도로 줄면서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가장 큰 생각들은 왜 내가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 정말 내 주변 사람들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것이 맞는지 하는 문제들이었다.

사실 1 + 1 = 2처럼 인생에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당연하게 도출되는,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도덕적으로는 사람이 더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자기 주관대로 살아간다. 나는 그저 주관적으로 사람을 선택했을 뿐이고. 근데 왜 굳이 사람을 추구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논리적으로 답하기 어려웠다. 생각해 보니 나는 도덕뿐만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이입 정도도 고려해서 사람을 선택했던 것 같다. 돈이나 권력 같은 가치들에는 쉽게 이입이 되지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갖고 싶지도 않고, 권력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정치 쪽은 정말 성격이랑 안 맞고.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놀고 떠들고 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는 이입이 잘 됐던 것 같다. 좀 잘해 주고 싶고. 그래서 결국 사람을 추구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니까 다음 문제가 남아있었다. 왜 ‘굳이’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나는 그래도 좋은 변호사가 되어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여기에는 대학 때 경험의 영향이 아주 컸다. 그런데 꼭 변호사가 아니어도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왜 꼭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는지 다시 생각해 봤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싱거운 답변밖에 내릴 수 없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에는, 내가 아는 한 변호사라는 수단이 최적이어서… 다른 직업들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국 당연히 현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대안도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다른 하고 싶은 일들도 좀 있었고.

대략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변시를 바라보면서, 다시금 변시 망한다고 인생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마음이 편해진 것 같기도 했고, 나 스스로가 간사해서 마음이 풀어진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큰 긴장감 없이 변시는 지나갔다.

이제 변시 합격 발표까지 20일이 남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변시에 대해서 요즘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 붙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 군대는 어떻게 되냐, 변호사 되면 무슨 일 하면서 살 거냐 등등. 나는 이런 질문들이 전혀 싫지 않고, 다 편하게 대답하긴 하는데, 다만 항상 이번에 안 되면 그만둘 거라고 대답한다. 더 이상 마냥 공부만 하고 있을 여건도 아니고. 큰 미련은 없을 것 같다. 이제는 결과를 담담히 기다릴 생각이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