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가치에 관하여

Bogaeng 2022. 11. 7. 22:50

사실 스스로의 가치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공식에 의해서도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크다는 명제는 도출되지 않는다.
인권도 그 중요성과는 별개로 서로를 해치지 않고 존중하기 위해 만든 사회적 합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존중할 만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이 세상 전체의 시각에서 봤을 때 내가 엄청난 가치를 가졌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공허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나는 이 넓은 우주에서 티끌의 티끌도 안 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칼 한 방, 병 하나에 죽어 버리고 마는 100년 살기도 꽤 힘든 생물이다.
나는 그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거고, 어쩌다 보니 이 세상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나 스스로는 인지할 정도인 미약한 수준의 지능을 가지게 돼서, 의미 없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건 아닐지.

당연히 내가 인생에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성과'들도 별로 나 스스로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았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해서 내가 갑자기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변호사 자격증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내가 서강대 나왔다 해서 갑자기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지금까지 어떤 성과도 나에게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주는 데에 실패했다.

그래서 경쟁과 성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경쟁심이 대단한 사람들, 그걸 발판 삼아 '성공'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나는 그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직도 그런 성공이 의미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의 직업, 자격 같은 것도 다 그냥 아이들의 역할놀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런데 반대로 남한테 민폐 끼치기는 싫어서 내 일에서 실수가 생기면 자괴감을 많이 느끼는 편인데, 최근 실수가 있어서 좀 괴로웠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어도 민폐 끼치지 말고 주변 사람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 주면서 살자고 생각하는데, 그게 깨졌을 땐 참 힘들다.

그래서 한동안 나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한 가지 결론에 이르러서 위안을 많이 받았다.
나는 사는 게 공허해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비로소 삶의 공허함을 좀 잊게 된다.
그런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반대로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는 게, 살아가는 데에 큰 위안이 된다.
내가 그 사람들한테 가치 있는 존재라면, 나 스스로도 내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내가 아끼는 사람들한테 더 집착하나 보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쌓이는 요즘은 더 그런 것 같다.
일에 치이다 보니 별 생각을 다 하게 되네.
결론은 나랑 놀아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