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1 : 30

Bogaeng 2023. 2. 12. 20:33

남과 비교하지 말자는 신념을 가지고 살지만, 스스로 자주 비교하는 대상이 있다.
21살 때쯤의 나와 비교한다. 대학 2학년 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그때부터 22살 때까지가 내가 가장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동기부여도 가장 잘 되어 있었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때였는데.. 벌써 9년이나 지나 서른살 아저씨가 되었다.

지금의 아저씨와 젊었던 그때를 비교하곤 한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지.
약간 한심하다고 욕하지 않을까?
도대체 왜 그렇게 찡찡대냐고, 왜 그렇게 타협했고 겁이 많아졌냐고.
그때의 내가 바라던 것들 중 많은 걸 얻지 않았나. 변호사도 됐고, 많지는 않지만 1인분 정도의 월급도 받고.

그런데도 지금의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쌓이고 그것 때문에 압박을 받으면 금방 불만을 토로하고, 지쳐 버린다.
휴일 출근이나 늦게까지 하는 야근도 최대한 피하려고 하고.
업무를 하다가도 6개월밖에 안 된 나에게서 당연히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실수가 나오면 나에게 무거운 책임이 돌아올까 겁을 낸다.
동료 분들께 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가끔은 부끄럽게 느껴진다.

21살 때는 가진 거 하나 없었지만 왠지 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땐 가진 게 없었는데도 꽤 많은 걸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욕 먹는 건 당연히 두렵지 않았고, 밤도 많이 새우면서 일했고, 더한 것도 했었고.

21살 때의 나에게 욕을 많이 먹겠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나 나름대로 변명이 있다.
타협한 거 맞다. 그러나 나는 보성 할아버지를 잃으면서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생각보다 보성 할머니와 엄마는 나이를 빨리 드셨다.
나에게 가족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돈돈거리며 살기 싫었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을 잡아먹었고, 내가 금전적으로 무너지면 내 주변 사람들까지 무너진다.
실제로 변호사를 하겠다는 나의 고집 때문에 우리 집은 기둥을 뽑아야 했다.
결국 돈돈거리며 살 수밖에 없다, 양심을 파는 짓까진 안 하겠지만.

또, 살면서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졌다.
그 사람들을 챙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갔을 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아마 일과 신념만 보고 살아가면 얼마 안 가서 엄청 후회하겠지.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변명만 계속 늘어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21살 때의 나한테 한 대 맞고 고생 많다고 위로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죽을 것 같겠지만 잘 버텨 줘서 고맙다고.. 뭐 그런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