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글과 얼굴에 관하여

Bogaeng 2024. 2. 1. 00:06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샤프들 중 하나인 게리 샤프.

 

 

 

 

 

 

  내가 ‘나’임을 인식하고 나 자신에 관해서 어느 정도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여 평가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스스로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면의 가치관이나 성격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측정하기도 너무 어렵고 변할 수 있으니까 사회에서 내 내면보다는 외모가 더 중요하게 평가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춘기 때 나의 외모에 대하여 신경을 쓰도록 만들었고, 한편으로는 몇몇 콤플렉스를 낳기도 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고방식은 사춘기 이후 지금까지 항상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의문의 대상이었다. 크면서 보니 사람들의 외모는 늙어가며 꽤 많이 변했고, 성형으로도 변하는 경우들을 많이 봤다. 심지어 살이 찌고 빠짐에 따라 외모가 꽤 변하기도 했다. 결국 외모도 고정된 것이 아니고 꽤 쉽게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사람들의 내면은 크게 변하기 어려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내성적이고 예민하고, 복잡했지만 지금도 크게 다른 인간은 아니다. 다만,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생존 방식을 터득하고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어렸을 때는 비교적 사람이 유연하게 변하는 것 같고, 큰 충격을 주는 경험은 사람을 바꾸는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나이 이후로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크게 변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는 사람들의 내면이 사람들의 얼굴보다 그 사람을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글을 적극적으로 쓰고, 올리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내 글은 내 얼굴보다 훨씬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니까, 내 글을 사람들이 읽고, 나의 이야기를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내 글을 읽고 감상을 전해 주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감사했다.

 

  또, 자기 이야기를 긴 글로 적어 내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종종 인스타나 블로그를 통해 가까운 사람들이 적은 자기 내면의 진지한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매우 반갑다. 그런 글들은 꼬박꼬박 다 읽어 보는 편이다. 작은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읽어 보고 그 사람의 심리나 살아온 궤적에 대하여 혼자 생각해 보곤 한다.

 

  물론 아직도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외모에 영향을 받고, 아마 평생 그렇겠지만, 내 가치관에서 외모의 중요성을 떨어뜨린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예전에 겪었던 콤플렉스들도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고, 건강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행위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서, 항상 글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