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9) 썸네일형 리스트형 쾌락에 관하여 스스로 쾌락주의자라 생각한다, 살면서 대단한 쾌락까지 누려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쾌락은 쾌락이고 고통은 고통이니까 쾌락은 (큰 해악이 없는 한) 누리고 죽는 것이 좋고, 고통은 회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문득 샤워를 하다가 내가 지금까지 누려 본 쾌락과 포기한 쾌락 중에 나름의 쓸 거리가 있는 쾌락들에 관하여 글을 쓰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쓴다. 1. 음식 먹는 즐거움을 제대로 깨우친 건 사춘기즈음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매우 까다로웠다. 과일주스 같은 것만 잘 먹고 고기 같은 건 싫어했다고 한다. 부모님 모두 은근 입맛이 까다로우신데, 그 부분을 닮았나 보다. 그래서 나는 사춘기 전까지는 소식좌였다. 그러다 2차 성장이 시작되면서 입맛이 트이기 시작했고, 대.. 글과 얼굴에 관하여 내가 ‘나’임을 인식하고 나 자신에 관해서 어느 정도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여 평가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스스로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면의 가치관이나 성격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측정하기도 너무 어렵고 변할 수 있으니까 사회에서 내 내면보다는 외모가 더 중요하게 평가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춘기 때 나의 외모에 대하여 신경을 쓰도록 만들었고, 한편으로는 몇몇 콤플렉스를 낳기도 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고방식은 사춘기 이후 지금까지 항상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의문의 대상이었다. 크면서 보니 사람들의 외모는 늙어가며 꽤 많이 변했고, 성형으로도 변하는 경우들을 많이 봤다. 심지어 살이 찌고 빠짐에 따라 외모가 꽤 변하기도 했다. 결국 외모도 고정된 것이 아니고 꽤 .. 이탈 - 도망 이후 - 이탈(離脫) - 도망 이후 - 1. 낙조(落潮) H는 빠른 걸음으로 구두소리를 내며 깊은 당산역을 내려가고 있었다. H는 항상 당산역을 내려갈 때마다 서울의 직장인들에게 참 어울리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쉬지를 못하는 서울의 직장인들, 그리고 그들을 더욱 서두르게 하는 깊디깊은 당산역. H는 간신히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퇴근시간의 지하철은 항상 몸을 부대끼며 타야 했지만, H가 항상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지하철이 소음을 내며 움직였고, 어둡던 지하철 창에 갑자기 주황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H에게 쏟아졌다. 한강에 낙조가 반사되고 있었다. 탁 트인 한강과 현대적인 빌딩들,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낙조를 H는 무척 좋아했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언제 봐도 처음 서울에 올라오는 사람처럼 사진..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이미 말씀드린 분들도 있지만, 저는 다음 변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발표 이후 며칠간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결국 문제는 저의 오만, 안일함, 공부 방식, 공부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변시라는 시험은 검증된 방식으로 남들보다 열심히만 하면 붙는 시험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못 했던 거였고요. 그래서 앞으로 9개월도 안 남은 짧은 기간 동안에는 저에 대한 신뢰를 모조리 부수고 검증된 선생님들과 교재, 커리큘럼만 믿고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학원도 등록했고요. 그리고 발표 이후에 제가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서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가족들과 응원해 주셨던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사실 또 다시 시험 준비를 하려면 만만치.. [정자동] 변시 끝나면 정자동 한 번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어쩌다 보니 오게 되었다. 이 날씨에 홀로라도 정자동에 굳이 굳이 온 이유는 정자동이라는 동네를 좋아하기 때문인데, 나는 중3 때부터 정자동을 좋아했다. 그 당시 나는 고속버스를 타거나, 성남 사시는 이모 댁에 머물거나 하는 방식으로 매일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중3 초반엔 과고 준비 학원에 다니다가 도저히 수학이랑 물리가 안 맞아서 때려치우고 후반엔 외고 준비 학원에 다녔는데, 과고 준비 학원이 바로 이 정자동에 있었다. 그때 거의 매일 갇혀 있다시피 한 학원에서 창문으로 타임브릿지를 보게 되었는데, 건물이 예뻐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정자동을 거닐거나 어머니 차에 타서 구경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건물들이..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