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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구피에 대하여

 

구피를 오래 살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밥을 하루에 한 번만 주는 것이다. 그럼 성장도 느려지고 발색도 덜 예쁘게 되지만, 오래 살게 된다고 한다.

구피의 수명은 2~5년. 구피를 오래 살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읽고 고민했다. 구피들은 하루 한 끼 먹고 5년 사는 게 행복할까, 하루 세 끼 든든히 먹고 2년 사는 게 행복할까?

우리와 달리 (우리의 '자아'도 미숙하고 불안정하지만) 구피에게는 자아가 없다. (우리도 죽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죽음에 대한 이해도 없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죽을 병에 걸려 몸이 아파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숨을 뿐, 죽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피 입장에서는 결국 먹고 싶을 때 먹으면서 2년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밥은 든든히 주기로 했다. 쑥쑥 커 가는 구피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데 문득 인간의 삶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50년을 살든 100년을 살든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삶의 길이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래 산다는 건 분명히 장점이 크다. 발전하는 세상을 구경할 수도 있고, 아끼는 사람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성장도 더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오래 산다는 건 아끼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고통은 상당할 것이다.

오래 살기 위한 대가가 아끼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 늙고 병든 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면 과연 정말 오래 사는 게 행복한 일일지 고민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항상 아끼는 사람들 자주 보면서 시간을 채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과학의 발달로 노화와 죽음이 극복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끼는 사람들과 늙지 않고 오래오래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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