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건 전문 변호사도 아니고 징계장교를 해 본 적도 없지만 1년 반 정도 징계취소소송 같은 소송들을 하고 건너 건너 징계 사건들에 관해서 들으면서 느낀 것들을 좀 써 볼까 합니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이 글을 통해서 여러 의견이 오가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1. 변호사가 꼭 필요한가?
요즘 군에서 징계받으면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징계 절차에서부터 변호인을 선임하는 사람들도 꽤 많고요. 그런데, 징계 절차 – 항고 절차 – 징계취소소송 제1, 2, 3심까지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면 수천만 원까지 들게 됩니다. 과연 큰돈을 들여 꼭 변호사를 선임하여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가. 징계 절차
징계 절차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홀로 조사받고 위원회에 출석하고 징계처분서를 받고 나서야 징계취소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대로 그 징계 건에 대하여 다투어 보려면 징계 절차에서부터 변호인을 선임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판결로 징계를 취소하려면 3심까지 거치면서 몇 년의 시간과 엄청난 돈이 들 수 있는데, 징계 절차에서 변호인과 증거와 주장을 잘 정리해서 다툰다면 더 낮은 징계를 받을 수도 있고, 심지어 징계를 안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한 번 내려진 징계는 취소 판결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낮은 수위의 징계를 받거나 징계를 안 받는 게 최선입니다.
실제로 좋은 변호인을 선임해서 큰 도움을 받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징계위원회 끝나고 위원들끼리 ‘저 사람은 변호인 덕분에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가끔 있습니다.
나. 징계취소소송
1) 소송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경우
가)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본인이 억울한 사실로 징계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이 한 적 없는 행위, 혹은 징계받을 만한 사실이 아닌 사실로 인하여 징계받은 사안 등이 있겠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소를 제기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에서 징계를 취소하는 판결(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면서 해당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 원고의 부대에서 원고를 다시 같은 사유로 징계할 수 없을 테니까요. 결국 이러한 경우에는 소송을 통해 확실한 구제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나) 중징계를 취소하고 경징계를 받을 수 있는 경우
(1) 중징계가 무서운 이유
먼저, 군 간부가 받는 징계처분은 파면 – 해임 – 강등 – 정직 – 감봉 – 근신 – 견책 처분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파면 ~ 정직이 중징계이고, 감봉 ~ 견책이 경징계입니다. 중징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부수적인 효과도 굉장해서, 중징계 처분을 받으면 군 생활 자체가 휘청거리게 됩니다.
파면이나 해임을 받으면 전역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강등이나 정직을 받아도 현역 복무 부적합 전역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57조 제2호에 따르면 중징계 처분을 받았거나 2회 이상의 경징계 처분을 받은 사람은 현역 복무 부적합자 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군규정 및 매년 발령되는 장교/부사관 진급 지시에 따르면 중징계 처분을 받을 경우, 그 해 진급 예정자 명단에서 삭제됩니다(진급 낙천). 같은 계급에서 두 번 이상 진급 낙천되면 더 이상 진급 선발 대상이 될 수 없게 됩니다(군인사법 시행령 제35조 제2항, 동법 시행규칙 제31조의4 제2항).
(2) 판결에서 중징계가 취소된다면?
물론 판결로 징계가 취소되어도 군은 상당 기간 내에 같은 사유로 그 사람에 대하여 다시 징계처분을 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1998. 6. 12. 선고 97누16084 판결 참고). 하지만, 만일 재판부가 해당 징계 처분이 그 사람의 징계 사유에 비해서 너무 무겁다(재량을 일탈 · 남용한 것이다)고 판단하였다면, 부대는 원래 내렸던 징계처분보다 가벼운 징계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만일 어떤 사람이 언어폭력으로 ‘정직 1월’을 받았는데, 이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이 선고되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부대는 최고 ‘감봉 3월’ 처분까지만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중징계를 취소시키고 경징계를 받을 수 있는 경우라면, 소를 제기할 이익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소 제기에 고민이 필요한 경우
가) 더 낮은 징계를 받아도 군 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
만약 정말 큰 잘못을 한 사람이 최고 징계인 ‘파면’ 처분을 받고 해당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이 확정되었는데, 부대에서 다시 ‘해임’ 처분을 내렸다면, 물론 일부 금전적 손해배상도 받겠지만,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 소송을 할 가치가 있었다고 하기 애매해집니다. 또한, ‘해임’ 처분을 받아 전역하게 된 사람이 취소 판결이 확정된 이후 ‘강등’ 처분을 다시 받아서 군에 남게 됐다 하더라도,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역 복무 부적합 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되고, 진급에서도 낙천하게 됩니다.
물론, 한 단계 혹은 그 이상 낮은 단계의 재징계를 받는 것은 이익이 맞지만, 재징계를 받았을 때 본인이 군에서 계속 복무할 수 있을지, 향후 다시 진급할 수 있을지 등 여러 사정을 잘 고려하여야 합니다.
나) 다수의 징계 사유 중 일부만 인정되어도 그 징계처분이 무겁다고 볼 수 없는 경우
종종 많은 징계 사유로 징계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로 중징계를 받습니다. 만일 일부 징계 사유만 인정되어도 그 징계처분이 징계 양정 기준에 합당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부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 않아도 판결에서 그 징계처분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경우에는 소를 제기해서 얻는 이익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2. 그 외 이야기들
좀 딱딱한 이야기들을 썼지만, 징계 사건들을 마주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들 때가 많습니다. 불륜, 성폭력 사건에서 배우자가 쓴 탄원서를 볼 때, 징계 대상자의 가족사진을 볼 때, 혹은 징계 대상자의 뻔뻔한 태도를 볼 때 등등. 점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감경하지 않고 원래 징계 양정대로 냉정하게 징계를 내리는 게 답인가 하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군에서 징계 사건들이 줄기를 바랍니다(특히 음주운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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