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망치듯 홍천에 왔었다. 그리고 이제 홍천을 떠날 때가 되었다. 최근에 홍천강을 뛰고 강변에 앉아 있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천에서 내가 만들어 놓은 생활이 나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군법무관으로 입대하고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심신이 너무 지쳐 있었고, 2년차에는 무조건 쉴 수 있는 곳에 가겠다 마음먹었었다. 마침 홍천에 친한 분께서 법무참모(나의 상관)로 와 계셨고, 일도 그렇게 많지 않아 보였다. 서울이나 이천과도 가까웠고. 그래서 작년 8월, 포천 5군단을 뒤로 하고 홍천으로 요양을 왔다.
야근에 주말 출근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살다가 홍천에 오니 칼퇴가 낯설었다. 처음엔 칼퇴하는 게 뭔가 잘못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다 그 여유에 적응하니 퇴근하고 누리는 저녁 시간과 주말이 너무나 좋았다. 러닝도 하고, 골프랑 복싱도 배우고 중국어 공부도 조금씩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홍천에서 지내면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유빈이를 만나게 된 게 참 감사한 일이고, 일하면서 만난 분들도 좋은 분들이었다. 1년차엔 전화하면서 싸울 일도 꽤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게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홍천에 있는 동안 딱히 새로운 일을 배우진 않아서 성장은 없었는데, 이게 괜찮은지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3년차에는 좀 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잠깐 3년차에는 군검사나 국선변호 같은 새로운 일을 하거나 다시 소송을 많이 하는 곳으로 가야 하나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전역하고 나서 자동으로 갈려 나갈 텐데 굳이 군법무관 때까지 나 자신을 압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법무관 하셨던 판사님들도 골프나 배우라는 말씀을 하셨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건강 챙기면서 자기 계발이나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 3년차 임지로 유빈이랑도 가깝고, 일도 그렇게 많지 않은 대전을 골랐다.
예전에 어떤 변호사님이 자기는 법무관 시절이 인생에서 제일 좋았다고 말씀하셨다는데, 그게 어떤 말인지 이제는 좀 이해가 된다. 확실히 나도 지금이 내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편안한 시기다(돈은 없지만). 3년차에는 월급이 조금 오르니 더 좋지 않을까 싶고.
종종 홍천을 거쳐 간 법무관님들께서 이곳에 놀러 오신다. 확실히 그리울 만한 곳이다. 나도 떠나면 생각이 종종 날 것 같다. 나중에 막국수나 먹으러 다시 와야지.
'수필 > 군법무관으로 살아남기 (2022. 5. 17. - 2025. 8.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결산 (6) | 2024.12.16 |
---|---|
군 징계에 관하여 (4) | 2024.03.13 |
2022 체력 검정 결과 (0) | 2022.11.07 |
송무에 관하여 (0) | 2022.11.07 |
오랜만의 춘천 (0) | 2022.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