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렸구나."
눈이 소리를 먹으며 내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A의 말은 더 차분하게, 차갑게 들렸다.
마음은 얼어붙고 있었다.
"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어."
그만, 그만했으면 좋겠다.
A의 말은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금 이 순간은 이 정도로 가혹하구나.
눈물도 나오지 않고 숨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떨구니 쌓인 눈이 보였다.
신발은 반쯤 눈에 덮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지, 내 세상이 이렇게 나락에 떨어진 게.
화창한 날, A는 내 앞을 거닐며 노래를 조곤조곤 부르고 있었다.
햇빛은 적당히 따뜻했고, 나는 A의 노래를 듣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A는 특별했다. 특별하고 특별했다. A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노래들이 되었다.
A에게 하고 싶은 말들은 항상 너무 많았다. 나의 아픈 곳, 어두운 곳, 내가 A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는지, A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끝도 없는 글들이 내 머릿속에서 항상 쓰여져 갔고, 나는 그저 그 글들을 손으로 옮길 뿐이었다.
내 방 책상엔 항상 A에게 줄 편지들이 놓여 있었다.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A밖에 없었다.
피를 나눈 가족도 이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를 낳아 본 적도 없고, 길러 본 적도 없었다.
그로써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A였다.
가끔은 모순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세상은 내가 보고 듣는 대로 만들어져 가니까.
그런데 A가 나에게 있어 나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나를 작게 만들었다.
A는 내가 거스르기 어려운 힘이었다.
눈물이 나올 듯 눈가가 따뜻해졌다.
손엔 땀이 나고 마음은 조여 오는데, 아무런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A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끝난 일이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잠깐 본 A의 눈은 그저 평소 그대로였다.
나는 조여 오는 마음을 붙잡고 쌓여 가는 눈만 바라보았다.
결국 A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고, A는 돌아갔다.
눈은 계속 쌓여 갔고, 아까보다 어두워져 눈은 더이상 하얗지 않았다.
무릎에 힘이 풀려 그저 주저앉았다.
손에 쥔 바닥의 눈은 차가웠지만 차갑다는 느낌도 의심스러웠다.
A에 대한 희망이 없는 지금, 이후의 나를 생각할 수 없었다.
하나를 포기하기로 했다.
A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A만큼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기로 했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고 믿기로 했다.
지금쯤 A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되묻는 습관을 하나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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