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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쾌락에 관하여

 

 

 

  스스로 쾌락주의자라 생각한다, 살면서 대단한 쾌락까지 누려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쾌락은 쾌락이고 고통은 고통이니까 쾌락은 (큰 해악이 없는 한) 누리고 죽는 것이 좋고, 고통은 회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문득 샤워를 하다가 내가 지금까지 누려 본 쾌락과 포기한 쾌락 중에 나름의 쓸 거리가 있는 쾌락들에 관하여 글을 쓰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쓴다.

 

 

1. 음식

  먹는 즐거움을 제대로 깨우친 건 사춘기즈음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매우 까다로웠다. 과일주스 같은 것만 잘 먹고 고기 같은 건 싫어했다고 한다. 부모님 모두 은근 입맛이 까다로우신데, 그 부분을 닮았나 보다. 그래서 나는 사춘기 전까지는 소식좌였다. 그러다 2차 성장이 시작되면서 입맛이 트이기 시작했고, 대학생 때 정점을 찍었다. 이때 너구리 5봉지, 햄버거 4개를 먹은 기억이 있다. 로스쿨 다닐 때까지는 같이 먹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잘 먹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먹는 양이 확 줄었다. 포천에서 갈려 나가면서 준 먹는 양이 아직도 옛날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만큼 음식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줄어 아쉽다.

 

 

2. 담배

  20살 때 배우자마자 빠져들었다. 나에게 담배의 중독성은 어마어마했다. ‘이 좋은 걸 왜 끊지?’라고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그만큼 부작용도 빨리 느낄 수 있었다. 폐활량이 줄고, 피부가 상했고, 체력도 떨어졌다. 그러나 끊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연초는 항상 끊고 나서 2주쯤 됐을 때 가장 힘들었다. 지금 받는 스트레스가 담배보다 더 해롭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몇 번을 금연에 실패했다. 그나마 니코틴 패치의 도움을 받아서 잠깐씩 끊었었다. 끊다 피우다 하다가 액상 전자담배를 피우게 됐고, 종국적으로는 로스쿨 1학년 때 끊게 됐다. 공부하면서 체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끊었다. 금연은 참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담배를 정말 맛있게 피우는 꿈을 꾸곤 한다.

 

 

3. 술

  대학 생활에 큰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대학 생활과 몸을 망친 주범이기도 하다. 대학 들어가 사람들과 갖는 술자리는 정말 재밌었다. 동아리, 학부, 학생회 사람들이랑 원 없이 술을 마셨다. 그러나 20대 중반부터 술과 담배로 몸이 상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술을 좋아하고 종종 마시지만, 20대 초반처럼 마실 자신은 도저히 없다. 그러나 몸이 크게 상하지 않는 이상 딱히 끊을 생각도 없다. 몸이 너무 상하지 않을 만큼 조절하면서 앞으로도 마실 예정이다.

 

 

4. 운동

  운동은 원래 나에게 고통에 가까웠다. 어렸을 땐 축구를 싫어했고, 딱히 좋아하는 운동도 없었다. 달리기는 그럭저럭 했지만. 숨 차는 게 싫었고, 집단 운동 특유의 거친 분위기도 싫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나를 ‘다 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운동 강습을 시켜 주셨다. (잘 하진 않지만) 축구, 농구, 수영, 스키 등등을 조금씩 배웠다. 그러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친구들이랑 하는 운동이 재밌다고 느꼈고, 조금씩 운동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교 ~ 변호사시험 합격 전까지는 바빠서 운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결국, 내가 주도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것은 변시 합격 이후다.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러닝을 시작했고, 복싱이랑 골프를 배우고 있다. 테니스도 언젠가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정말 늦게 발견한 쾌락이지만, 운동만큼 역효과가 적고 건강한 쾌락도 얼마 없을 것이다. 평생 가져가야 할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5. 일

  대학생 때 돈을 버는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동아리나 학생회를 하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즐거운지 깨달았기 때문에, 반드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할 때 즐거웠고, 고양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변호사가 되려 했고, 지금도 그런 쪽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서 일에서 오는 재미는 별로 못 느끼고 있는데, 전역 후에는 그래도 더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6. 인간관계

  아마 인간관계가 나의 쾌락 중 1순위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한 건 20살 이후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전에도 가족 같은 소중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어리기도 했고, 오히려 인간관계로 힘들 때도 꽤 있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몰랐다. 20살이 되고 나서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은 서로 먹고 사는 게 바빠 다들 예전처럼 자주 못 봐 아쉽지만, 가까운 사람들이랑은 뭘 하든 즐겁다.

 

 

  항상 대학생 때보다 재미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건강한 쾌락을 상당 부분 떨쳐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가끔 사람들이랑 술 한 잔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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